감동2017. 7. 27. 14:48


2014년의 나는 40살의, 비싼 독일차를 드라이브하는걸 취미로 하고 직업은 세계적인 기업의 과장이였어. 이렇게만 말하면 내가 아주 잘나가는 사람이였던거 같지?ㅎㅎ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니였어. 세계적인 기업의 과장이긴 했지만 그 기업의 주력계열ㅇ; 아닌 요즘말로 '쩌리'계열의 과장이였고, 그 비싼 독일 자동차는 전 주인이 사고로 죽어서 거의 헐값에 나온, 움직이는게 신기할정도의 거의 반파수준의 똥차였지.

 

내가 하던 과장이라는 직함도 겉으로는 승진이였지만 실제로는 명예퇴직이나 다른없었어. 내가 있던 계열의 부서에 과장을 달았던 사람들은 몇 계속해서 승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자기 스스로 회사를 나가거나 단 한번의 승진도 하지 못한채 회사를 나가야만 했으니. 나도 솔직히 이동표를 받았을때 모욕감에 회사를 나가고 싶었지만 그럴수가 없었지. 나이가 심하게 차이가 나서 이제 갓 스무살이 넘은 내 동생들을 내가 키워야 했으니까.

 

상황이 이러니 난 여자를 사귈수가 없었어. 그래도 세계적인 기업이고 연차가 많으니 기본급은  높았지만 성과급이 다른 계열과 심하게 차이가 나니 실제로 들어오는 돈은 그렇게 높진 않았고, 무엇보다 막 회사에 입사를 했을때 홀어머니가 유산한푼 없이 돌아가셔서 아들딸만한 동생들을 혼자키워야 했으니 돈은 들어오는 족족 빠져나가기 일수였지.  

 

40살이 되서 유일하게 가진게 30평에 가까운 20평대 집 하나와 언제 고장날줄 모르고 보험비만 비싼 독일차 그리고 1억 정도 들어있는 적금통장 하나였어. 하지만 그게 내가 연애를 못하는 이유는 아니였어. 한직이라 돈은 많이 못받지만 남는 시간은 많았고, 차도 있었으니까. 내가 연애를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어. 바로 얼굴. 아주 못생긴 얼굴.

 

비록 지금은 주름이 얼굴을 가려서 그런지 아니면 지금의 아내를 만나 외모와 패션에 신경써서 그런지 요즘은 한국의 닉 우스터 소리를 들으며 예쁜 20대 30대 아가씨에게 고백을 받기도 했지만,  내가 20대.. 특히 10대 때는 가관이였어. 솔직히 말해서 어떻게 우리엄마가 날 왜 키우셨지?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새로 짝궁을 정하는 날이 오면 내 여자짝꿍이 우는건 매번 있는일이였고, 처음보는 사람들도 내 외모를 보고 비웃는건 일상이였지. 

 

필력이 짧아서 내 외모가 어땠는지 자세히 표현을 못하겠지만, 어느정도냐면 반애들이 내 얼굴보고 무섭다면서 괴롭힘은 커녕 말도 걸지 않을 정도라면 상상이 될까? 아마 초등학생이 유해진씨 얼굴을 가졌다고 하면 상상이 될꺼야. 뭐 요즘은 다행히(?) 초등학교 이래로 얼굴이 전혀 늙지 않고 외모와 패션에 신경을 많이 써서 외모가지고 비웃음은 커녕 호감이라고 말을 들을 정도지만, 2015년 당시의 나는 여전히 외모가 콤플렉스였지.

 

그럴수밖에 없는게 민감한 10대때부터 외모에 대해 극심한 조롱과 멸시를 받았는데 얼굴과 나이가 어울리는 40대가 되었다고 한번에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풀릴수가 없었겠지. 실제로 2014년때 사진을 보면 패션이 촌스럽고 외모는 조금 못생긴 정도였는데 그때 당시에도 나는 여전히 외모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으니.

 

서두가 길었네. 아무튼 2014년의 절반이 지나 2014년의 5월의 마지막주의 일요일. 나는 모처럼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그때 핸드폰이 울렸어. 동기인 A였지. 아니 동기가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입사를한 A였어. 미국 명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IMF시대때 당당히 입사한 A와 달리 난 단지 여러 특이한 외국어를 어느정도 잘한다는 이유로 거의 통역알배생으로 입사한 케이스였거든. 실상은 비정규직이였지만.

 

아무튼 휴일에 전화할정도로 친하지는 않았던 A에게 전화가 오자 조금은 받기 망설였지만, 그래도 A는 동기들중에서 유일하게 날 비정규직출신이라고 무시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날 외모가 아닌 한명의 인간으로 대해준 사람이기에 전화를 무시하는건 예의가 아닌것 같아 난 전화를 받았어. 전화를 받자 A는 나에게 "친구 왜 이렇게 늦게 전화받아?"라고 말하며 외국에서 오래 산 티를 내며 살갑게 대했지. 실제로 친하지도 않았으면서

 

내가 A의 말을 끊고 무슨일 있어서 전화했냐고 차갑게 말해도 A는 자기 할말을 계속한채 갑작스레 말했어. 오늘 저녁에 맞선이 있는데 나가줄수 없겠냐고. 내가 너무 당황해서 할말을 잃자 A는 계속 자기할말을 계속했어. 오늘 맞선이 있는걸 깜빡하고 여자친구랑 오늘 홍콩행 비행기를 예약했다고. 주선자한테 약속을 미뤄줄수 없냐고 물으니 반드시 오늘이여야 한다고 해서 동기중에 독신이고 직급이 높은 사람을 대타로 보내라고 말해서 널 추천했다고.

 

내가 너무나 당황해서 말을 잊지 못하는데도 A는 계속 말했어. 맞선녀 외모는 어떻고, 어느 대학 나왔고, 어느 집안이고, 어디에서 일하고 등등. 당황한 감정을 어느정도 추스리고 난 A의 말을 끊고 말했어. 동기들중에 잘나가는애들도 많고 돌싱 포함하면 독신인애들도 많은데 왜 하필 나냐고. 그리고 입을 옷도 없고 차도 고장났다고. 나로서는 꽤 완곡하게 거절한건데 A는 내 말을 이해못한건지 아니면 모른척한건지 해맑게 말했어.

 

독신인애들중에 부장은 너랑 나밖에 없잖아. 그래서 널 추천했어. 계속 이미 추천했다는 A의 말이 혹시 잘못 말한건지 아니면 이미 주선자에게 내가 나가기로 된건지 의도가 궁금해서 난 다시 A에게 말했어. "이미 주선자는 내가 나가는걸로 아는거야?" 그러자 A는 말했지. 응 비록 사진으로 봤지만 여자애도 괜찮고, 너 아직 여친없잖아 그래서 주선자한테 말했지. 내 동기인데 과장인 친구가 대신 나갈꺼라고.   

 

난 너무나 당황해서 A에게 화를 낼수조차 없었어. 학교도, 회사도 대부분 외국에서 지낸 A는 맞선을 단지 소개팅이나 둘이서 파티하는 개념으로 알고있었을테니까. 무엇보다 화를 낼수 없는 가장 큰 이유가 A는 비록 나와 직급이 같지만 거의 내 상관이라는 이유겠지. A는 라인을 잘타 (아마) 임원이 확정된 우리 회사의 에이스고 나는 명퇴가 확정된 회사의 계륵이니. 마치 같은 중사라도 상사(진)과 퇴직이 확정된 중사가 같은 계급이 아닌것처럼.

 

무엇보다 난 사회생활을 하면서 어떤 약속이라고 약속은 무조건 지켰거든. 그게 계약직인 내가 정직원으로 전환이 되고, 비록 명패뿐이지만 부장이 된 이유니까. A에게 나가겠다고 말하자 A는 기뻐하면서 약속장소와 시간을 알려줬어. 그리고 자기 차도 타고 입을 옷 없으면 자기 옷 입으라면서 집주소와 비밀번호를 알려주곤 전화를 끊었지.  

 

A와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내가 뭔짓을 했는지 깨달았어. 내 인생 처음으로 여자와 맞선을 본다는 거였지. 제정신을 차린 나는 예의가 아닌걸 알면서도 다시 취소할려고, A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A는 비행기를 탔는지 아니면 전화를 씹는건지 전화를 받지 않았고 난 거울을 바라봤어. 주말내내 씻지 않아서인지 머리는 부스스 했으며 얼굴엔 수염이 자라있었고, 냄새는 더더욱 가관이였지.

 

무엇보다 얼굴은 이게 사람의 얼굴이 맞나 싶을정도로 못생겄었어. 아마 내가 맞선 상대여자였다면 아굴창을 한대 때리지 않을까 싶을정도로. 그냥 잠수타고 싶었지만 난 맞선에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어. 뭐 못생긴 나한테 여자한테 차가운시선과 조롱어린 시선을 받는건 익숙하니까. 비록 마음의 상처는 받지만.

 

난 몸을 깨끗이 씻고 A의 집을 향했어. IMF시절에 유학을 갔을정도니 어느정도 집안이 좋을거라고 예상을 했지만 A의 집은 예상보다 더 큰집이였어. 백평가까운 한채를 옆의 다른 한채와 합친 집이였으니.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안에 들어가자 양복 한벌과 차키 그리고 카드와 함께 콘돔하나가 현관앞에 놓여있었어. 필요하면 더가져가. 굿럭!.이라는 쪽지와 함께. 역시나 A는 미워할수가 없는 성격이였지.

 

나는 사양하지 않고 A가 놓은 옷들과 차키 그리고 시계를 차고 A집을 떠났어. 콘돔은 놓고갔지. 나에게 기적이 없는한 좋은집안의 그것도 예쁜 맞선상대와 하룻밤을 보낼리가 없으니까.

 

난 A의 페라리를 타고 약속장소로 향했어. 갑작스레 처음으로 맞선을 하게되서 떨릴줄 알았는데, 난 전혀 떨고 있지 않았어. 미래가 보였거든. 내가 들어오자마자 상대는 바로 실망스런  표정을 할테고 조금이라도 나와 같이 있기 싫어서 밥을 최대한 빨리 먹을 그 미래가. 아예 조금이라도 기대를 하지 않으니 오히려 마음은 편벨해지더라.

 

어느새 차는 호텔 로비에 도착하고 난 차밖으로 나왔어. 로비근처의 사람들은 새빨간 페라리에서 쥐드래곤 같은 연예인이 나오나 하는 눈치였는데 내가 차밖에 나오자 조그마하게 비웃었지. 역시나 예상했던 바였지만 나는 이런 인생이였어. 새빨간 페라리보다  새빨간 마티즈가 어울리는 남자, 그리고 신라호텔 라연보다 기사식당이 더 어울리는 남자. 나는 날보고 웃는 그 사람들을 모른채 지나가고 약속장소로 향했어.

 

식당입구에 들어서자 점원이 예약을 했냐 물었고 난 A의 이름을 말했어. 그러자 점원은 창가자리를 가리키며 이미 기다리고 계신다고 말했지. 난 나름 30분일찍 온건데 이미 왔다는 점원의 말에 서두르며 창가자리로 다가갔어. 그 자리만 여성한분이 혼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난 제발 그 여성만 아니길 바랬어. A한테 듣던거 보다 훨씬 예뻤거든. 만약 그녀가 내 얼굴을 보고 비웃으면 평생의 마음의 상처가 될것 같은정도로.

 

하지만 내 발은 멈추지 않고 그녀를 향해 걷고 있었고 그녀도 내 존재를 눈치챘는지 날 바라봤어. 난 하느님께 빌었어. 제발 그녀가 내 얼굴을 보고 비웃지 않게 해달라고. 하지만 그녀는 날보고 웃었어. 하지만 비웃음이 아니라 환한 웃음이였지. 그녀는 내 얼굴을 보고도 환하게 웃으며 자기소개를 하고 자리에 앉았고, 나도 인사를 해야 했지만 예쁜여자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게 오랜만이라 당황해 한참을 서있다가 자기소개를 하고 자리에 앉았어.

 

자기소개를 하고도 내가 아무말을 하지 않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어. 날 이렇게 기다리게 한 남자는 당신이 처음이라고. 난 놀라서 시계를 쳐다봤어. 시계와 핸드폰 시계 모두 약속시간인 8시 30분전을 가리켰고 난 말했어. 혹시 약속시간 8시 아닌가요?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7시라고 말했고 난 사과를 했지. 계속된 사과에 그녀는 괜찮다고 대신 밥을 사달라고 했고, 난 알겠다고 말했어.

 

그리고 나서 같이 밥을 먹는데 난 너무나 행복했어. 그녀는 내 못생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고 또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어. 예쁜여자가 내 얼굴을 보고 웃어준건 엄마와 내 여동생 그리고 아주 옛날 여자친구밖에 없었는데 가족 이외에 처음으로 내얼굴을 아무 편견없이 봐주는 여자였지. 너무나 행복했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때 서로 무슨말을 주고받았는지 기억이 나지않을 정도로.

  

어느새 요리코스는 후식코너가 되있었고, 난 그녀와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알고있었어. 난 그녀가 맞선전에 주선자에게 미리 들은 MIT 출신의 세계적인 기업의 주력계열사의 과장 A가 아니라 그저 지잡출신에 자격증만 오지게 많이 따고 외국어만 잘해서 정규직으로 겨우 전환이 됬는데 이제 곧 퇴직해야 되고 얼굴은 오질라게 못생긴 나니까. 그래도 난 다신 그녀와 못봐도 사과는 해야 될것 같아서 그녀에게 솔직하게 말했어.

 

난 원래 오늘 소개 받기로 한 MIT 출신의 세계적인 기업의 주력계열사의 그 과장이 아니라고. 그녀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면서 말했지. 난 이미 그 사실을 알고있었다는 그녀의 말에 놀랄수 밖에 없었어.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녀가 내 못생긴 얼굴에 비웃지 않고 같이 앉아준 이유가 그녀가 착해서 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잘나가는 기업의 에이스과장이라고 착각해서 라고 생각했었거든.

 

그녀는 계속 말했어. 뭐 MIT출신의 에이스 과장 아니면 어때요? 맛있는 밥 잘 얻어먹었으면 됬지. 그리고 날 바라보며 환하게 웃어주었어. 난 그때 결심했지. 비록 이 여성분에 재력,학력,외모등등 뭐 하나 빠짐없이 부족한 나지만 오늘 이 여성분에게 고백해야 겠다. 만약 내가 누군가와 결혼할수 있다면 이 여성분밖에 없겠다.

 

우리는 후식을 먹고 계산하고 호텔밖을 나갔어. 원래 발레파킹 해둔 차를 타고 여성분을 태워서 집에 보낼생각이였지만, 고백을 차에서 하게 되면 손이 떨려서 사고가 날것만 같았거든. 난 그녀를 데리고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았어. 그리고 용기를 내서 말했지. 혹시 죄송한데 한 번만 더 뵐수 있겠냐고. 그녀는 내 고백을 듣고 처음에는 당황해 하더니 나중에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어. 그리고 말했지. "죄송해요.. 죄송해요.." 

 

평균이하인 내가 상류계층의 그녀에게 고백하는것 자체가 말이안되기에 난 그녀에게 어떤 거절을 당해도 마음에 상처 받지 않을 준비를 해둔 상태였는데 그녀가 내 고백을 듣더니 울면서 죄송하다고 말하자 뒷통수를 망치로 쎄게 맞은것처럼 심한충격을 받았어. 내가, 못생긴 내가 고백하는게 착한 그녀가 울정도로 심한 일이구나..

 

그때 난 내 고백에 잘웃고 긍정적인 그녀가 울면서 사과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을 잃었는지 아니면 항상 여자에게 차이기만 하는 40년의 인생에 화가났는지 그녀에게 무례하게 말했어. "제가 왜 싫은거죠? 역시 제 얼굴때문인가요? " 내 질문에 당황한 그녀는 그게 아니라고 얼굴때문이 아니라고 말하자 난 그녀의 말을 끊고 다시 말했어. "그럼 역시 제가 부자가 아니여서 인가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원래 여자가 못생긴 날 바라보듯이 차가운 눈으로 날 바라봤고, 이성을 잃은 난 계속 말했어. "혹시 제가 못생기고 부자가 아니여서 인가요?"

 

그녀는 눈물을 그친채 그 차가운 눈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어. "아니요. 비록 당신이 돈이 없어도 내가 많이 벌고 있으니 문제없고, 믿지 못하시겠지만 전 사람의 외모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다만 저는 저만을 사랑해줄 어른스러운 남성을 찾는것 뿐이에요. 당신은 그저 제가 예뻐서, 친절해서 3시간도 안되서 좋아하게 된거 아닌가요?"

 

난 그녀의 말에 반박을 할수없었어. 그녀의 말이 사실이니까. 단지 그녀가 내 얼굴을 보고도 비웃지 않았다는거에 사랑에 빠진거였으니까. 그녀의 말에 제정신이 든 나는 그녀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했어. 정말 죄송하다고. 그녀는 다시 날보고 환하게 웃은채 괜찮다고 말했지. 하지만 그 웃음은 3시간전과 달리 전혀 밝지 않았지. 난 그녀에게 차마 데려다주겠다고 말하지 못한채 헤어져야 했어. 

 

그녀를 택시에 태워 보내고 한참을 고개를 숙인채 공원내를 걸어다니면서 멍하니 걷던 나는 다시 호텔로 돌아온 발레파킹해둔 차를 다시 A의 집에 주차해놓고, 빌려온 옷을 깔끔하게 걸어놓고 A의 집을 왔을때의 내옷을 입은채 거울을 바라봤어.

 

눈은 한참을 울어서 그런지 충혈되 있었고 얼굴은 여전히 못생겼고, 옷은 10분전의 모습과는 달리 너무나 초라했지. 10분전의 나는 적어도 빨간 페라리를 타고 고급 컨시어지가 포함된 VIP카드를 소유한 돈많지만 못생긴 아저씨였는데 거울속에 비친나는 그저 평범하고 평범한 돈없고 중년의 못생긴 아저씨였으니까.

 

나는 서둘러서 그 집을 나왔어. 그 집에 더이상 있다가는 자살하고 싶어질것만 같아서. 시계를 보니 2시가 다되가서 이미 전철은 끊긴지 오래였고, 10년된 낡은 지갑속에 돈은10000원짜리 1장과 5000원짜리 2장. 비록 카드에 돈이 있긴하지만 정말 구차하고 구차한 삶이였지. 나는 한강으로 걸어갔어. 죽으려고 한건 아니고 그저 지하철 첫차를 기다리는게 빠를것 같아서. 그리고 한강둔치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술을 마시고 싶었고.

 

나는 한강둔치 근처에 있는 편의점으로 들어갔어. 보나마나 이 모습, 이 얼굴로 편의점에 들어가면 알바생이 강도인지 알고 놀랄게 뻔했기에 최대한 미소를 보이려고 했지만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라 그냥 신고할꺼면 신고해라 자포자기하며 편의점에 들어갔는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예쁜 여자알바생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도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미소를 보이며 '어서오세요' 라고 말했지.

 

예전에 야간 편이점에 갔다가 알바생이 내 얼굴을 보고 겁을 먹었던게 트라우마가 되서, 그 후로 야간에 편의점에 안갔던 나는 평소같았으면 그 예쁜알바생이 날 보고 웃는거에 1달내내 기분이 좋았겠지만 당시 내 마음은 피폐해져있었고, 나는 그저 마실 소주와 안주 몇개를 사서 그 예쁜알바생에게 건넸어.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차갑게 건넸는데도 그 알바생은 무슨 좋은일이 있는지 날 향해 웃으면서 얼마입니다~. 라고 했고, 당황한 난 지갑에 있는 10000원자리 1장과 5000원짜리 2장을 꺼내서 알바생에게 주고 남은돈은 가지세요. 라고 하며 서두르듯 그 편의점을 나왔지.

 

딸만한 나이의 알바생의 환한 웃음에 차인지 얼마나 됬다고 기분이 좋은지 나도 참 내가 미웠지. 난 한강둔치에서 앉아서 멍하니 한강을 바라보며 소주 1병을 까고 깡소주를 마셨어. 그리고 조용히 한참을 웃었지. 아마 맞선녀에게 친절을 사랑으로 받아들지 말라는 그말을 듣지 않았다면 그 예쁜알바생도 날 좋아한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르니까.

 

소주 1병을 다 마시고 2병째를 깠을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서 뒤에 쳐다보니 아까 그 예쁜 편의점 알바생이 아까처럼 날 환하게 쳐다보고 있었어. 전화번호를 물어볼려고 온게 아니라고 확신을 한 나는 말했어. 혹시 돈이 부족해서 오신거냐고. 그러자 그 알바생은 고개를 젓고 잔돈이 너무 많아서 갖다주려고 왔다고 말했지. 혹시나 하고 1퍼센트의 가능성을 믿었던게 한심했던 나는 다시 한강을 바라보고 말했어. 잔돈 얼마 안할테니까 가지셔도 된다고.

 

그런데 그녀는 9만원을 팁으로 받으면 자기 양심에 찔려 잠 못잘거라고 말하자, 난 그 알바생을 쳐다봤어. 그리고 말했지 손님께서 5만원짜리 2장이랑 1만원짜리 1장을 주셨다고. 팁은 천원이면 족하다고. 그리고 내 주머니에 9만원을 넣어주는데 여자와 10년만의 스킨쉽에 당황해서인지 술에 취해서인지 그냥 9만원 가지라고 말하고 다시 한강을 쳐다봤어.

 

그러자 그 알바생은 갑자기 내 옆에 앉고는 말도없이 안주로 사놓은 과자를 까서 입안에 넣더니 날 쳐다보고 말했어. "아저씨 혹시 자살할거에요?" 너무 천진난만 해서일까 아님 진지하게 물어서일까. 직설적으로 자살할거냐는 그 알바생의 물음에 난 웃음으로 답했고, 그녀도 날 따라 웃었지.

 

한참을 웃고 나서 난 말했어. 자살안할꺼라고. 자살할 용기도 없고 자살하기에는 내 동생들한테 너무 미안하고 날 키워준 엄마한테도 미안해서 안할꺼라고. 그냥 오늘 내 자신이 한심해서 이러는 거라고.  그러자 그 예쁜 알바생은 무슨일이 있었길래 그러는거냐고 천진난만하게 나에게 물었고, 난 어차피 평생 안볼 여자인데 여자한테 한풀이나 하자면서 살면서 지금까지 있어온 한 많은 일들이랑 오늘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어.

 

난 술이 들어가서인지 한참을 울면서 얘기를 했는데, 그녀는 마치 재밌는 얘기를 듣는듯 내가 안주로 사놓은 과자를 먹은채 내 얘기를 흥미롭게 들었지. 어느새 얘기가 끝나고 들리는 소리라고는 그녀가 과자를 먹는소리 뿐이였어. 한참을 얘기를 안하던 그녀는 말했지. "그럼 아저씨 지금까지 여자한테 고백 몇번한거에요?"

 

너무나 생뚱맞은 그녀의 질문에 난 솔직하게 말했어. "30살에 한번 오늘 40살에 한번했네요." 내 대답을 듣고 그녀는 곧장 말했지 "30살때 고백은 성공했어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말했어. "그럼 괜찮네요" 괜찮다는 그녀의 말에 날 놀리는 건가 싶어 난 약간 신경질적으로 말했어. "뭐가 괜찮은데요?" 그러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지. "고백, 2번에 1번은 성공했으니 성공률 50%. 이정도면 괜찮은거 아니에요?"

 

그녀가 너무나 해맑은 웃음을 띄어서인지 너무나 해맑은 대답을 해서인지 나는 조용히 웃었고 그녀도 따라 웃었지. 그리고 그녀는 계속말했어. "아저씨 요즘 TV보세요. 40살 먹은 아저씨들 20대 30대 아가씨랑 사귀고 그러잖아요? 이병헌도 최근은 아니지만 이민정이랑 결혼했고. 이병헌, 아저씨랑 동년배 아니에요?" "이병헌.. 형인데.."  "그럼 차승원은요?" "한참 형.." "그럼 정우성?" "형.." "차태현은요?"  "아마 모르겠지만 동갑이거나 동생?" 질문의 취지가 이상하게 변하자 나와 그녀는 서로를 바라보고 웃었어.

 

불과 1시간 전만해도 그저 편의점 알바생과 손님뿐인 관계였던 우리였고 내가 일찍 결혼했으면 딸뻘인 그녀였지만, 어느샌가 소꿉친구처럼 친근하게 느껴졌지. 친구 같이 느껴진 나는 그녀에게 물었어. "만약 내가 학생한테 사귀자고 하면 어떻게 할거에요?"  나는 장난식으로 말한거였는데 그녀는 진심으로 받아들였는지 곰곰히 생각하더니 말했어. "아저씨 저 몇살처럼 보여요?" 뜬금없는 말에 난 20살처럼 보인다고 솔직히 말했지. 그러자 그녀는 말했어 "아저씨 나이는 몇짤?"

  

그렇지. 나는 이런 예쁜 소녀와 사귀기에는 나이도 들었고, 돈도 많지 않았지. 나는 그녀가 뻘쭘해할까봐 그녀에게 말했어. "학생 이제 시간도 늦었는데 택시타고 집에가. 저기 밝은데 가면 택시 아마 많을꺼야" 내가 은유적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말했는데도 그녀는 내 말을 무시하고 팔에 턱을 괸채 그 커다랗고 예쁜눈으로 날 쳐다봤어. 그리고 눈웃음을 지은채 말했지. "아저씨. 저한테 제대로 고백해봐요. 어쩌면 몰라 받아줄수도."

 

척봐도 장난인걸 안 나는 일부러 과장된채 말했어. "사실 편의점에서 절 보고 웃는순간 첫눈에 반했습니다. 저와 사귀어 주세요" 그녀는 내 말을 듣자마자 일어나서 고개를 숙인채 웃음을 참으며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고는 웃었어. 요즘말로 기대를 1도 안했던 나는 웃으며 일어나서 빨리 그녀에게 택시타고 집에 돌아가라고 아까 돌려줬던 9만원을 다시 그녀의 주머니에 집어놓고 택시타고 집에가라고 말했어.

 

그러자 그녀는 말했지. "사귀는건 무리지만 데이트는 해드릴수 있어요." 내가 놀라 아무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주머니 속에 내 핸드폰을 꺼내 자신의 번호를 찍고 자신의 핸드폰에 전화를 한다음에 말했어. "시간날때 카톡보낼께요. 나중에 봐요" 그리고 그녀는 수줍게 웃더니 택시정류장을 향해 걸었지. 그리고 다시 뒤돌아서 나에게 말했어. "66퍼센트가 됬네요. 아저씨?" 

 

아직도 그 상황이 꿈만 같았던 나는 뭐가 66퍼센트냐고 물었고 그녀는 다시 크게 말했어. "3명중에 2명 성공했으니 66퍼센트." 그리고 다시 택시정류장을 향해 걸었지. 난 지금 상황이 꿈만 같아서 아까 그녀가 주고간 전화번호에 문자를 보냈어. '반올림하면 67퍼센트 아니야?' 그러자 1분도 안되서 다시 문자가 왔어. '0.6퍼센트를 1퍼센트로 반올림하는건 째째하지 않아요?' 그 상황은 꿈이 아니였지. 그게 나와 지금의 아내와 첫만남이였어.




그 날 눈을 뜨니 핸드폰은 미친듯이 울리고 있었고, 시계를 바라보니 아침 11시가 되있었어. 제발 이게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눈을 비비고 다시 시계를 바라봐도 시계바늘은 11시를 가리키고 있었지. 15년 가까운 회사생활동안 지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기에 어찌해야 할줄 몰랐던 나는 내 못생긴 얼굴을 대충 세수하고 미친듯이 환복을 하고 집밖을 나섰지.

 

그 당시 전 날 맞선때 있었던 일들이나, 그 날 새벽에 있었던 편의점 미소녀 알바생과의 일들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지. 숙취때문에 머리는 아팠고 10년 넘는 회사생활 처음 한 지각에 어찌해야할지에 급급했으니까. 

 

미친듯이 차를 꾸역꾸역 타고 노란불은 무시하고 달린 결과 회사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우리 부서는 점심 먹을준비를 하고있었고, 빨리 회사에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지 무슨 변명을 할지 생각조차 안했던 나는 부서에 들어오자 보이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 어찌해야 할지 몰랐어. 부원들도 넥타이도 제대로 안매고 자다 일어나서 머리를 세운체 온 나를 그저 쳐다보기만 했지.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게 부하직원만 있어서 다행이다 생각하고 회사 구석탱이에서 더더욱 구석탱이에 있는 내 책상에 가방을 올려놓고 팀원들에게 "늦어서 죄송합니다"라고 웃으며 말하며 자리에 앉는데 내 정면에는 우리 부서소파에 앉아서 서류를 손에 쥔채 나를 바라보는 과장님이 보였고 난 드디어 우리 부원들이 왜 내 꼬라지를 보고도 평소처럼 웃지 않는지 단번에 이해가 됬어.

 

업무성과는 좋지 않아도 분위기 하나만큼은 좋은 우리 부원들이, 틈만 나면 부장인 나를 놀리기에 바쁜 우리 부원들은 과장님이 있었기때문에 사리고 있었고, 난 그 자리에 얼은채 머리속은 암울한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과장님은 일어나셔서 내 어깨를 주무르시며 호탕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셨어. "아무리 한가한 우리 부서에 오셨어도, 9시에는 출근 하셔야 합니다. 부장님" 그제서야 우리 부원들은 웃으며 지각했으니 점심사라면서 날 놀리며 말했지.

 

그제서야 긴장이 풀린 나는 먹고싶은거 마음것 먹으라며 법인카드가 아닌 내 카드를 김대리에게 건넸고, 부원들은 신나며 뭘 먹을지 토론하고 있었지. 나는 부원들이 뭘 먹을지 고르는 동안 화장실에서 밀린 세수와 빗질을 하는데 그제서야 전날 있었던 일들이 기억이 났어. 맞선 나가서 못생긴 나를 사람취급을 해준 맞선녀를 만난것, 그리고 그 맞선녀에게 고백했다가 단번에 차여서 맞선녀에게 심한 꼬장을 부린것, 그리고 새벽에 내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착하고 여배우라고 해도 믿을만큼 아름다운 미모의 한 여성을 만난것. 그리고 그 소녀와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을 한것.

 

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확인했어. 혹시 이게 꿈인것만 같아서. 그리고 꿈인것만 같아서. 아무리 꿈속이라도 40살의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는 내가 갓 20살이 된것 같은 그 착하고 예쁜소녀와 데이트 약속을 할리가 없으니까. 떨리는 손으로 메시지 확인을 하니 정말로 난 그녀와 메시지를 보낸흔적이 있었어. 그리고 후회를 했지. 왜 하필이면 여자와의 첫 메시지를 '반올림하면 67퍼센트 아니야?' 라고 보냈지 하며.

 

그리고 다시 그녀가 보낸 문자를 확인했어. '0.6퍼센트를 1퍼센트로 반올림하는건 째째하지 않아요?' 그리고 삐진듯한 이모티콘. 한참동안 이모티콘을 바라봤지. 마치 눈앞에 예쁜 그녀가 실제로 장난스럽게 삐진표정을 보는것만 같아서. 내 휴대폰에도 있는 그 이모티콘이 너무나 귀여워서.

 

얼마나 한참을 그 이모티콘을 바라봤는지 김대리가 화장실까지 와서 밥먹으러 안가냐고 제촉을 하고 있었고, 난 김대리에게 난 속이 안좋으니 안먹겠다고 말하고 김대리를 떠밀듯이 보냈어. 그리고 부원들이 떠난 그 자리에 혼자 앉아 계속 그녀가 보낸 이모티콘을 한참동안 바라보며 당시 상황을 생각했어. 안그래도 술이 약한 내가 혼자서 소주 3병을 마셨으니 그녀의 얼굴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때 그녀와의 대화, 그리고 그녀가 날 바라보던 사람대 사람으로 바라보던 그눈빛을.

 

얼마나 그 이모티콘을 쳐다봤는지 벌써 식당에 도착한 김대리가 시킨 음식을 찍은 카톡을 보냈고 난 그제서야 깨달았어. 서로 핸드폰 번호를 교환했으니 카톡친구 추천에 뜨겠구나.. 난 핸드폰 앱 구석 한복판에 갖다놓은 카톡을 실행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친구추천 목록을 봤어. 쓸때없는 광고 사이트 사이로 그녀의 모습이 보였지. 당시 카톡을 그저 문자용도로만 쓰는 나에게 친구추가는 물론 프로필사진을 자세히 보는건 무리여서 손톱만한 프로필 사진밖에 볼수 없었지만 난 그걸로도 행복했어. 정말 당시 술에 취해서가 아니라 이쁘고 이뻤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너무나 착했기에   

 
핸드폰 화면만한 프로필 사진을 보기위해 빨리 김대리가 오기만을 바라면서 카톡을 제촉한 결과, 김대리는 내 몫으로 싸둔 음식을 들고 나에게 무슨 급한일이 있냐고 물었고 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 혹시 여기 친구추천에 뜬 사람 친구추가랑 프로필사진 확대 가능하냐고. 김대리는 급한 메시지 보내야 하냐며 웃으며 내 핸드폰을 가져갔고 프로필을 확대한 사진을 보며 말했어. 근데 누구에요? 이번에 우리 회사랑 CF찍은 그 예쁜 친군가?
 
못생기고 여자와 인연이 없었던 부장이 여자사진의 프로필 사진을 보려고 하는게 신기했는지 부원들은 앞다투어 내 핸드폰을 가져갔고 물었어 누구냐고. 나는 빨리 사진좀 보게 핸드폰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재촉했다가는 더더욱 추궁을 당할게 뻔해 난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했지. 군대간 내 남동생 여자친구라고. 그제서야 남자직원들은 포기를 했는지 내 핸드폰을 다시 건네주었고 장난식으로 남동생분 여자친구랑 헤어지면 알려달라고 말했어. 나도 자연스럽게 웃으며 내 핸드폰을 받아들고나서야 프로필 사진을 봤지.    
 
직원가로 싸게산 그 최신형 대화면 핸드폰에는 그녀의 웃는얼굴이 가득찼고 순간 심장이 멈추는듯했어. 그녀는 술에 취해서 미화되서 예뻤던게 아니라 화면에는 이게 사람인지 천사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새하얗고 환한 그녀의 얼굴이 보였어. 고등학교때 찍은 사진인지 그녀는 교복을 입고 있었고 하복에 비친 속옷의 끈은 40년만에 나도 남자라고 내 거기는 오줌을 싸는용도만 있는게 아니라 다른용도도 있다는걸 깨닫게 했고.
 
내가 얼마나 한참을 멍하니 쳐다봤는지 남자직원들은 남동생 여친은 뺐는게 아니라고 하며 웃었고 난 그 봐도봐도 질리지 않는 그 핸드폰 화면을 끈채 멍하니 컴퓨터 화면을 바라봤어.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날 일할분량은 이미 부원들이 대부분 끝낸상태였기 때문에 난 더더욱 제정신을 유지할수가 없었지. 이게 현실인것 자체가 믿어지지가 않았으니까.
 
얼마나 한참동안 멍하니 컴퓨터화면을 쳐다보았는지 4시가 되있었고, 갑자기 정적을 깨는 내 핸드폰 밸소리가 울렸어. 발신인은 '예쁜 하나'. 바로 그녀였지. 그녀에게 전화가 오자 난 부장의 체면 같은건 접어두고 회사사람들이 절대 오지 않을 가끔 내가 땡땡이 칠때 가는 나만 아는 회사의 비밀장소, 차와 과자가 없는 탕비실,에 달려갔고 할말은 정해놓지 않은채 전화를 받았지.
 
얼마나 급하게 뛰었는지 아니면 그저 내가 늙었는지 숨소리만이 방안에 가득찼고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어.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리자 난 큰소리로 "예 안녕하세요. 그날 밤엔 잘 들어가셨어요?" 라고 되물었어. 그러자 그녀는 크게 웃었지. 그리고 말했어. "처음엔 변태처럼 숨만 크게 쉬더니 이번엔 존댓말이에요? 어제는 존댓말 안했잖아요." 그러고보니 문자도 초면인 그녀에게 반말로 되있었지.
 
내가 머리를 쥐어잡고 혹시나 예의없는 사람을 보이지 않았을까,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인데 외향적인 성격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등등 여러 생각을 하는동안 사과가 먼저다 싶어서 전화라서 지금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그녀에게 90도로 머리를 숙인채 사과했어. 원래 초면인 사람한테 절대 반말 안하는데 반말해서 죄송하다고. 그러자 그녀는 "뭐 딸뻘인 아가씨한테 반말한게 어째서요?" 라며 크게 웃으며 말했고, 나도 조용히 웃었지.
 
우리는 한참을 웃고 서로 몇분째 간단한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고 몇초간의 정적끝에 그녀는 말했어. "아저씨 지금 데이트하실래요?" 난 주저없이 말했어. "물론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회사근처에 있는 서초역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지. 그제서야 나는 첫 지각에 이어 첫 반차를 해야한다는걸 깨달았지만 전혀 문제되지 않았어. 아무 이유없이 반차를 하면 과장님에게 욕은 먹겠지만 반차를 하고나면 그녀와 만날수 있으니까.
 
난 차와 과자가 없는 좁은 탕비실에서 과장님께 어떻게 말할지 고민하고 곧장 과장님께 달려가서 말했어. 몸이 너무 안좋아서 반차를 써야될것 같다고. 과장님은 호탕한 웃음으로 내 건강 걱정하면서 어차피 이번분기 목표계획 달성했으니까 그냥 반차도 내지말고 가라고 하셨고 난 또 신나서 "예! 알겠습니다!" 라고 아픈 연기는 잊은채 짐싸들고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 서초역으로 달려갔지.
 
1층까지 계단으로 뛰어가고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 서초역까지 달려가는데 아까와 달리 전혀 힘들지 않았어. 마치 마라톤 선수들이 40KM 지날때쯤 느낀다는 아드레날린이 내 몸안에 폭발적으로 흐르는것만 같았지. 얼마나 달렸는지 평소보다 절반의 절반도 안되는 시간에 서초역에 도착했고 난 근처 벤치에 앉아서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렸어.
 
핸드폰에 비치는 내 모습과 핸드폰 속의 그녀의 모습은 미녀와 야수처럼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때의 난 이제 몇분후면 그저 그녀를 만날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지. 비록 내 눈앞에 있는 서초고등법원이 나에게 20살가까이 차이나는 그녀와 만나는게 죄라고 말하는것 같았지만 난 그래도 좋았어. 1번만, 단 1번만 만날수 있어도 감옥에 간다 해도 감옥에 가고 싶은 마음이였거든.
 
몇분이 지나고 누군가 내 등을 쳤어. 그녀라는 생각에 신나서"예!!"라고 말하며 뒤를 쳐다봤는데 그녀가 손가락으로 내 볼을 찌르고 있었지. 어렸을적 그 장난을 당했을떈 손가락 대신 쇠젓가락이라던가 뾰족한 샤프였는데 그녀의 손가락이라는 생각에 그 어두운 과거따윈 기억나지도 않았지. 그녀는 날 똑바로 쳐다보며 "아저씨 오래기다렸어요?" 라고 말하는데 순간 "예!"라고 말할뻔했어. 그녀를 기다리던 그 몇분이 내게 몇 시간 몇 년 같았거든.
 
하지만 난 그 '예!'라는 말대신 웃으며 고개를 저었지. 그러자 그녀는 웃었고 내게 말했어. 가고싶은게 있냐고. 난 아차했지. 갈곳은 커녕 월말이라 그런지 돈도 많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를 위해서라면 적금도 깨자라고 마음먹고 내가 반대로 어디가고 싶은곳 있냐고 물었고 그녀는 내게 전날 준 9만원을 손에 보인채 그럼 자기가 데이트 추천하는 장소로 가자면서 내 손을 잡았고 난 그 손을 꽉 잡았지. 이 여자는 신이 착하게 살아온 나에게 주신 내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2번의 짧은 연애와 1번의 긴 연애를 해봤지만 2명의 여성은 결혼사기 비슷한 사기꾼들. 1명의 여성은 허영심이 많은 여자였던 만큼  데이트비용이 한번에 몇십만원이 깨진적이 있던게 흔했던 나에게 9만원 가지고 데이트를 할수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9만원 아니 만원가지고도 그녀와의 데이트는 충분했어.
 
그녀는 저녁을 콜라만 만원가까이 하는 호텔 식당이 아닌 포장마차의 김떡순세트면 충분하다면서 분식음식을 맛있게 먹었고, 쇼핑도 고급 백화점이 아닌 시장에 떨이로 파는 반지를 샀고, 10만원이 넘는 콘서트나 뮤지컬이 아닌 사람많은 거리에서 거리공연을 하는 멋진 뮤지션의 음악을 들었지.
 
솔직히 그때의 기억이 자세히 기억나지 않고 단편적으로만 기억이 나는게 그녀와 데이트를 하는동안 죽을만큼 행복해서 심장이 너무 뛰어 심장을 주체하는데 정신이 없었거든. 그리고 어차피 처음이자 마지막인 데이트일텐데 그녀의 환한 웃음을 머리속에 채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많은 시간이 지나 사람많던 골목이 텅 비어지고 그녀와 나 사이의 정적이 흐를때 난 직감했어. 여기서 그녀와 헤어지는구나. 그래도 내 인생 마지막 데이트만큼은 정말 내 목숨과 목숨보다 소중한 돈을 전부 주어도 아깝지 않은 여성과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래도 그녀와 1번뿐인 데이트지만 마지막만큼은 멋있게 보이고 싶어 그녀에게 할말을 생각하는데 활발한 그녀가 조금은 나에게 미안하듯이 말했어. "아저씨.."
 
분명 이번 데이트가 마지막일거라는 말이라는걸 이미 알고 있었던 나는 말했지. 나는 괜찮으니까 말해도 된다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래도 그녀는 계속 나한테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이번이 마지막 데이트라도 괜찮다는 어른의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할말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지 않았지. 그러자 그녀가 한말은 뜻밖의 말이였어. 머리가 많이 기니 자신이 잘라준다는 얘기였어. 
 
뜻밖의 머리를 잘라준다는 그녀의 말에 혹시나 그녀의 집에 가는 건가 하며 조금의 희망을 가져봤지만 우리가 도착한곳은 그녀가 평소에 일하던 미용실이였어. 미용실에는 영업시간이 끝나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하는,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원장이 있었고 그녀는 원장에게 웃으며 이 아저씨 머리좀 잘라주고 간다고 말했고 미용실 원장은 미심쩍은 얼굴로 미용실키를 그녀에게 건네주고 미용실을 떠났어.
 
그녀는 날 의자에 앉히고 가만히 거울속의 나를 쳐다봤어. 너무나 예쁜 그녀의 눈망울에 내가 눈을 피하자 그녀는 웃었지. 하루종일 그렇게 내 얼굴 쳐다봤으면서 아직도 안 익숙하냐고. 나는 그녀의 말에 그냥 어색해서 피한거라고 말했지만 그녀의 말이 맞았었어. 아직도 그때의 나는 그녀의 예쁜얼굴에 익숙해지지 않았었지. 내가 예쁜여자를 볼수 있었던 기회는 TV속의 예쁜 아이돌 밖에 없었으니까.
 
그녀는 내 반응에 웃더니 내 머리를 만지며 말했어. 머리 기르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냐고. 머리를 기르는 이유?. 있었지. 7살때 나와 엄마곁을 떠나기전까지 매일 같이 나와 엄마를 때렸던 아빠가 내 눈을 보면 죽이고 싶으니 머리 자르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그리고 민감했던 10대 시절, 두발규정때문에 머리를 기르고 싶어도 기르지 못했던 10대 시절, 유난히 짧았던 내 머리때문에 얼굴이 두각되 심한 무시를 당했으니까.
 
이 사실을 그녀에게 말할까 말까 짧게 고민했지만 아마 내 인생 마지막 데이트에서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난 사실대로 얘기했어. 아버지 일부터 학창시절 무시를 당한일까지. 그녀는 얘기가 끝날때까지 거울속에 비친 내 눈을 보며 얘기를 들어주었고 나도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얘기했어. 얘기가 끝난후 난 나이값 못하게 울고 있었고 그녀도 마찬가지였어. 울고 있었던 그녀의 얼굴은 술에 취해 그녀의 얼굴을 기억못했던 내가 유일하게 기억한 그 얼굴이였지. 20살이나 어린 그 친구지만 마치 지금 하늘에 있는 엄마가 나를 다정하게 따스하게 바라보던 그 얼굴.
 
나는 웃으며 소매로 눈물을 닦았고 예쁘게 깍아달라고 말했고, 그녀도 소매로 옷을 닦고 말했어. 차태현보다 잘생기게 만들어 드릴께요. 그녀의 가위질은 망설임 없이 내 머리칼을 잘랐고, 난 눈을 감고 아직 미용사 자격증을 따지 못했다는 그녀를 믿고 눈을 감았어. 눈을 뜨면 그녀와 어울리는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길 바라면서. 가위질과 바리깡 그리고 그녀는 특별서비스라며 포마드와 함께 화장분을 나에게 발라주었고 그녀는 말했어. 이제 눈을 뜨세요.
 
눈을 뜨니 거울 앞에 있는 사람은 덮수룩한 머리와 앞머리로 얼굴을 가린 자신감없는 못생긴 중년이 아닌 짧은 머리에 웃는 얼굴이 인상이 좋은 중년으로 바뀌어져 있었어. 난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한채 믿기지않는 그 거울을 가까이 대며 내 얼굴을 바라봤지. 그 얼굴은 내가 알던 자신감 없고 못생긴 중년이 아니였어. 그저 잘생겼다고 말하기엔 조금 부족할지 몰라도 요즘말로 훈남이라고 말해도 부족하지 않는 중년이였지.
 
그녀는 웃으며 눈물을 흘린채 나를 바라봤고 그런 그녀를 보고 난 후의 나도 울고 있었어. 서로를 쳐다보지 못한채 거울을 통해 서로를 바라보면서. 먼저 말을 걸었던건 그녀였어. "제가 말했죠? 아저씨 못생긴거 아니라고 그저 꾸미지 못했을 뿐이라고."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한채 눈물을 흘린채 거울 속에 비친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지.
 
서로 몇분째 눈물을 흘리고 눈물이 그치자 그녀는 어색한지 빗자루를 들고 짜른 내 긴 머리칼을 쓸고 있었고, 나도 일어나서 그녀를 도울려고 근처 빗자루를 줍는데 그녀는 말했어. "아저씨 제가 할게요 아저씨는 늦었으니 이제 가세요. 내일 회사도 가야되잖아요." 난 괜찮다고 내일 회사 쉰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그녀는 웃으며 내 빗자루를 뺏고 말했어. "제가 할게요. 아저씨는 돌아가세요"
 
이것이 그녀와 마지막이라는걸 알았기에 나는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었어. 마지막 만큼은 좋은모습을 보이고 싶은데다가 뒤돌은채 머리카락을 쓸고 있는 그녀 밑에 조그마한 물방울이 눈물이라는걸 알아버렸으니까.
 
난 계속 뒤돈채 머리카락을 쓸고 있는 그녀에게 보이지도 않는다는걸 알고도 고개를 숙이고 말했어.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미용실을 떠났지.
 
차를 회사에 두고 왔기도 하고, 무엇보다 복잡한 마음에 걷고 싶었기 때문에 미용실에서 집까지 걸어가는데 난 내가 많이 달라졌다는걸 느꼈어. 평소에는 땅을 바라본채 긴 앞머리 사이로 길을 걷던 내가 당당히 앞을 보고 걷고 있었고, 평소에 나를 범죄자같이 쳐다보던 사람들도 나를 그저 평범한 한명의 시민으로 느끼는지 아무 신경도 쓰지 않은채 내 옆을 지나가고 있었지.
 
난 길거리에 멈춰서서 유리속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봤어. 머리스타일은 요즘스타일이라 어울리지 않을지도는 몰라도 내 모습은 그저 평범하고 인상좋은 중년 그 모습이였지. 내 모습이 믿기지가 않았어. 그래서 확인차 편의점에 들어가서 피우지도 않는 담배를 사는데 편의점 알바생은 내 모습을 보고도 그저 평범히 담배를 건넸고 돈을 받았지. 내가 그토록 바라던것. 평범.
 
얼마 지나지 않아 난 집에 도착을 했고, 한참전에 사놓은 소주를 깔고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술을 마셨어. 마치 인상좋은 동료와 술을 마시는것만 같았지. 난 핸드폰 화면속에 환하게 웃고있는 카톡프로필사진을 보고 또 내 모습을 바라보며 후회했어. 20년전에 이랬으면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연애도 일도 잘할수 있었을텐데. 내가 20년만 젊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런 후회들도 술이 약한 내가 술이 들어가니 오래가지 못했고 난 대충 이불을 깔고 누웠어. 제발 일어나면 내일이 오지않고 오늘이 다시 반복되기만을 바라면서.
 
눈을 뜨니 새벽이였어. 핸드폰이 미친듯이 울리고 있었고 난 누가 전화를 했는지 확인도 하지 못한채 전화를 받았어. 전화를 받자마자 간단한 자기소개와 집주소가 어디냐는 내용이였고 난 비몽사몽한채 주소를 말하고 다시 잠에 들었지.
 
다시 눈을 뜨니 새벽4시였어. 핸드폰은 울리지 않았고 대신 초인종만 울리고 있었지. 너무나 피곤했지만 군대간 남동생이나 학교때문에 대전에 내려간 여동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비몽사몽한 몸을 이끌고 문을 열었더니 남동생이나 여동생이 아닌 그녀가 앞에 서있었어.
 
밖에 소나기가 오는지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고 그녀는 온몸이 젖어있는 상태였어. 꿈인건가 하면서 그녀몰라 내 허벅지를 꼬집는데 그녀는 말했어. "아저씨.. " 그녀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부탁을 하려는것 같았고 난 순간 두려웠어. 그녀가 많은 돈을 빌려달라고 할것 같아서. 하지만 그 두려움은 오래가지 않았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숨겨둔 적금통장의 위치를 생각하고있었으니까.
 
마음의 준비를 한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뭐든지 말해도 된다고 말했고, 빗물에 마치 우는것만 같았던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말했어. "아저씨.. 정말 죄송한데요. 몇달 아니 며칠만 여기서 머물면 안될까요?"
 
이게 현실이든 꿈이든 내가 할말은 하나였지. "물론이죠. 평생 이집에 있어도 되요."



내 눈앞에 비를 맞은채 캐리어와 가방을 끌고 온 그녀가 보이자, 마치 꿈만 같았어. 아니 꿈이라고 생각했어. 안그래도 술이 약한 내가 혼자 병나발을 분채 술을 마시며 그녀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바라본채 잠을 잤으니까. 하지만 꿈이든 현실이든 아무래도 좋았었지. 내 눈앞에 다시는 못볼꺼라고 생각한 그녀가 서있었으니까.

 

난 볼이라도 꼬집어서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부터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내 눈앞에는 얇은 옷차림으로 비에 홀짝 젖은 그녀가 서있었기에 우선 그녀를 방안에 들였어. 그리고 여동생 방에 들어가서 여동생이 집에 남겨둔 큰 티셔츠와 반바지를 그녀에게 건네고 샤워를 하라고 했고 그녀는 고맙다고 말하고 우리집 화장실안으로 들어갔지.

 

난 멍하니 큰 타월로 그녀가 들고온 가방을 닦으며 상황을 정리했어. 이젠 앞으로 볼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던 그녀가 갑자기 내 집에 찾아왔고, 또 며칠만 내 집에 머물게 해달라고 말했고, 내 집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다고. 나는 TV드라마 클리쉐처럼 볼을 꼬집었어. 처음엔 잠에 덜깨서 그런지 많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세게 꼬집으니 잠이 깰정도로 내 볼은 아팠어. 그 상황은 현실이였어.   

 

그녀가 샤워하는동안 난 남동생이 쓰던 방에 들어가 그 방을 정리했어. 그녀가 오기 며칠전에 남동생이 신병휴가를 갔다왔기 때문에 포상휴가라도 받지 않는한 당분간 집에 오기 힘들기 때문에 가차없이 남동생이 쓰던방을 골랐지. 어차피 휴가를 받는다고 해도 누가봐도 잘생긴 내 남동생은 여느 여자집을 전전하며 잠을 잘테니까.

 

다만 걸리는건 여동생이였어. 어렸을때부터 잘생기기만 했지 공부는 지지리도 못했던 남동생과 달리 아빠는 다르지만 나와 같은 엄마의 피를 물려받았는지 의심그러울 정도로 똑똑하고 예쁘기까지기만 한 여동생은 거의 초면인 여자가 같은 집에 살게 된걸 알게되면 무조건 결혼사기라고 할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녀가 결혼사기라 해도 좋았어. 그저 내 곁에만 있어주기만 한다면.

 

이런저런 걱정과 조그마한 희망을 가지며 남동생방을 정리하는 동안 그녀는 샤워를 마쳤는지 오래된 화장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난 남동생방을 나와 그녀에게 말을 걸려고 거실에 나왔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없었어. 내가 쓰는 같은 샴푸가 맞나싶을정도로 향기로운 샴푸향과 여동생이 고3때 집에서 즐겨입었던 조금은 커다란 티셔츠가 그녀에게는 많이 큰지 한쪽어깨가 보이며 하얀 속살을 보였고 무엇보다 긴 머리를 말리며 날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에 다시 한번 그녀에게 반해서. 

 

그 티셔츠안에 그 짧은 반바지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고 생각이 들자 내 머리속엔 야한 생각뿐이였고, 일부러 소파에 앉아 그녀에게 앉으라고 권했어. 그녀는 몇시간 전의 환한 웃음대신 조금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고 그저 고개를 숙였지.

 

당시의 난 그녀에게 하고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았어. 어떤일이 있었길래 비가 오는 새벽에 캐리어와 가방을 매고 여기까지 왔는지, 무슨 일이 있었길래 갑자기 몇시간만에 금방이라도 울것만 같은 표정을 짓는지, 그리고 이 곳에 왔다는건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나와 인연이 될 마음이 있다는건지.

 

그밖에도 물어보고 싶은게 많았지만 이제 다 마른것같은데 계속 머리를 말리는척하며 나와 눈을 피하려고 하는 그녀에게 말을 걸수가 없었고, 난 말했어. 오늘은 이만 늦었고 나도 몇시간 있으면 출근해야 되니까 이만 자자고. 그녀는 그 말을 하자 드디어 내 눈을 바라보고 슬픈 눈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고 난 그녀를 남동생 방에 데려가 그녀에게 방을 소개했어.

 

소개라는 말이 거창할정도로 작은 방이였고, 컴퓨터와 침대가 있는 그저 평범한 20대 남성의 방이였는데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좋았는지 다시 몇시간 전의 그녀의 모습처럼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물었어. 혹시 이 컴퓨터 써도 되냐고. 내가 물론이라고 여기에 있는 모든걸 다 사용해도 된다고 말하자 그녀는 날 껴안았어. 그리고 말했지. 고맙다고.

 

나보다 키가 작은 그녀였지만 그 포옹은 어렸을때 매번 외모때문에 힘든일이 있었을때 괜찮다며 날 껴안아준 엄마의 포옹같았지. 아버지의 가정폭력도 친구들의 괴롭힘과 무시도 단번에 날라가게한 그 포옹. 짧은 포옹후 그녀는 내 눈을 바라보고 웃었어. 전날 데이트때 보던 그 환한 웃음이였지. 그 환한 웃음을 보자 심장이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고 난 서둘러 그녀에게 잘자라고 말했고 내 방에 달려가듯 도망갔어.

 

그리고 침대에 누워 억지로 잠을 청했지만 심장이 미친듯이 뛰어서 그런지 도저히 잠을 잘수가 없었지. 침대에 앉아 억지로 크게 숨을 드리내쉬며 마음을 진정시키는 동안 어두운 방안에 진동이 울리며 빛이 보였어. 이 시간에 메시지가 올일이 없기 때문에 급하게 핸드폰을 찾아 보는데 그녀에게 카톡이 와있었지. '아저씨 잘자요'라는 문자. 난 그녀에게 온 문자와 카톡 프로필 사진을 바라보며 인정할수 밖에 없었어. 40년 인생 처음으로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됬다는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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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Aus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