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2013. 3. 6. 18:47

-핼스갤러리 펌


여성심리는, 프로이트와 보봐르 이둘의 이론에 근거해서 파헤쳐보자.


프로이트는 '남근결핍'이란 용어를 필두로 여성심리를 자신을 대표하는 자신만의 자아가 없다고 한다.


이에 여성들, 혹은 다수의 남성조차 너무나 성적인 용어라 그 이론의 의미보다는 용어자체에 반발하며 거부감이 많았지.


이에 보봐르가 여성심리를 '대상적타아'로 정의. 타아(남자의 자아)를 흡수하여 자신의 자아를 만든다. 사실 내용은 동일하되 용어가 순화되어

여성은 인정하고 다수가 동의.


어쨋든 내용이 뭐냐면,


여자는 '주관'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거. 이건 현재와서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해. 


즉 학창시절 중,고딩까지는 여자가 똑똑해보이고 자아가 뚜렷해 보이지. 여기서 착각의 시작. 남자는 어린시절 같이 커왔던 경험으로 여자를 두려워해.

이때의 여성은 '아버지의 원숙한 자아'를 흡수한 상태.


즉 아버지의 자아를 내포한 여성은 또래의 남성을 초월한 든든한 고집과 주관을 풍겨

(그래서 아빠가 없는 집 딸, 혹은 아빠가 등신같은 놈의 딸은 아주 ㅄ이야.)

어린 남성은 이때 '자아찾기'로 광기,혹은 바보의 상태. 남자는 아빠의 자아를 부정. 남성은 아버지를 '적'으로 인식하는 이유가 자신의 자아를 자꾸 침범하려 하기에 반항기에 들어감.


이렇게 나이가 들어 20대를 지나 독립, 혹은 순수한 자신의 자아와 주관을 확립해가는 남성에 비해,

역으로 여성은 늙어가는 아버지의 자신없는 자아, 이미 어머니의 것인 아버지의 자아로부터 탈출하면서 자아상실기에 돌입.


여자가 남자를 찾는 동기는 성욕이 아닌, 결핍. 즉 주관결핍에서 자신을 이끌어줄 강한 주관을 얻는 과정.


남자의 강한 주관(자심감이 불리지)과 내면의 강력한 논리에서 풍기는 겉모습의 여유(혹은 지갑이 두꺼우면 이렇게 보이지)

여기에 속하려는 여자의 마음이 바로 사랑.


나는 저 남자의 주관에 탑승해야겠다. 그래서 나의 주관을 삼자.


이것이 여자의 본능.

(이런 대상적 타아의 이유는 '자식'을 돌보기 위해선 자식의 자아를 느껴야 하기에 '돌봄의 자아'로 불림.)


여자의 마음은 여자도 모른다.(이 말의 뜻이 여자는 자신의 상태를 진단할 스스로의 자아가 결핍된 대상적 타아로서 얻는 상태라는 뜻)


꼭 여자가 자아를 남편,애인으로부터만 찾는것은 아니고, 위인, 미디어, 사회체제등의 강력한 주관에도 영향을 받음.


창녀를 예로 들면, 동기는 자본주의 자체를 자아화,주관화 시키는 성찰없는 주관의 결과(보편적으로). 이래서 아버지의 든든한 주관이 없으면 더 강한 쪽으로 기울어 엉뚱하게 이렇게 많이 빠지는 이유. 


미친년이 있다면 그집의 아빠를 욕해라. 결국 김치녀라불리는 이상한 여자의 탄생은 그집의 아버지(남자)가 변변치 못한게 가장 압도적인 이유.

한국남자가 주관ㅄ이 워낙 많아 한국여자가 이상해짐.


나쁜남자에 끌리는 여성심리.


나쁜남자(진짜 나쁜놈이라는 전제)는 강한주관을 가진것이란 착시로 인해 그의 강력한 주관을 갖고싶다는 착시.


즉 여자를 대할땐 나쁘게 대하는게 아니라,


너의 강한 주관, 너의 뚜렷한 선택권. 일관된 흐름을 느끼게 해줘야 하고,

이건 실제로 그런 주관을 갖춰야 가능한것.

(그러니까 데이트할때 뭐 먹고 싶은지 조차 선택못해주는 남자는 아직 여물지 않은 남자의 탓이지 여자의 잘못이 아냐.)


자상ㅄ(혹은 마마보이)은 실제로 주관이 희미한 어린남자라는 절대적 반증(당연히 인기없지).

이런 남자는 실제로가 자신의 주관이 확립되지 않았지만,

자상ㅄ도 결국엔 주관이 생기고 자상ㅄ의 주관은 사회와 부합될것이기에 나이가 들면 멋진남자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여자에게 주관이 없다는 건 헛소리 


정확히는 낡은 소리. 옛날에는 그렇게 인식하는 수밖에 없었겠지만...

진짜 생각은 길게 했는데 다 쓰려니까 귀찮고... 대상적 타아와 강한 주관이라는 건 캐이브 맨 시대에 성적 역할 분담을 위해 태어난 일종의 생물학적 체계다.


현대에 그대로 적용시킬 수도 없고, 어거지로 적용시키려면 여자에게 결여된 건 주관이 아니라 [일견 무의미하다고 여겨지는 철학적 사고]에 대해서 미친듯이 몰두할 수 없다는 부분이지.


일례를 들자면 여자 수학자, 여의사, 여법관, 여자 장교, 여자 정치가까지 모두 있지만 [여성 철학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간혹 있다고 해도 이미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종교에 귀의한 경우가 태반이고.


사물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 반항하는 것보다 순응하려는 게 여자들 특징이기 때문에 [이미 있는 사실]을 공부시키면 엉덩이 딱 붙이고 여자가 더 잘하는 거고, [이미 있는 사실]을 부정하는 분야에선 여자가 도저히 남자를 못 따라오는 거다.


지동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천동설 옳다고 목숨 걸고 주장하는 건 남자, 빛과 시간축을 비교해서 [상대성 이론]이라는 세계 구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남자, 떨어지는 물체를 보고 당연한 게 아니라 [만유 인력]이라는 개념을 생각할 수 있는 것도 남자.


여자는 이런 걸 못한다. [왜?]는 있어도 그 왜?라는 대답을 다른 [누군가]에서 찾으려고 하니까. 간혹 미친 사내들은 일생을 걸고 그 [왜?} 뒤에 [어떻게?] [어째서?]를 다는 거고. 이런 놈들은 [누군가] 아는 사람이 없어도 [어딘가]에서 힌트를 얻어 [내]가 처음으로 만들어내지.


이게 바로 현대까지 남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다.


출처: http://www.issuein.com/51280

Posted by J.Austen